스포츠능력, 인간이 치타가 될 수 없는 이유

스포츠능력 : 인간이 치타가 될 수 없는 이유


철인경기가 잘 알려지지 않은 우리 나라에서는 마라톤철인운동이다. 42.195km를 쉬지 않고 달려야 하기 때문에 선수들은 곧잘 인간의 한계를 경험한다. 마라토너의 운동능력은 주로 산소와 영양분을 근육에 공급하는 심장과 폐 등이 좌우한다. 이들 순환계의 능력은 심폐지구력으로 대표된다. 그리고 심폐지구력의 지표로 최대 산소섭취량(1분간 몸무게 1kg당 산소섭취량)이 측정된다.

바르셀로나올림픽의 영웅 황영조 선수의 경우 최대 산소섭취량이 82.5mL으로 우리나라 선수 중 최고를 차지한다. 이봉주나 김완기 선수 등 정상급 마라토너들이 77~78mL, 중거리 육상선수들의 평균치가 67~70mL, 20대 남자의 평균치가 47mL 정도인 것과 비교하면 그의 심폐능력은 그야말로 철인의 것이다.

마라톤 선수의 심폐능력에서 볼 수 있듯이 최고 선수들과 일반인은 스포츠 능력에서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 우리 나라 역대 국가대표 선수들을 대상으로 지금까지 조사한 몇 가지 체력지수들을 보면 이것을 잘 알 수 있다. 근력의 지표가 되는 '쥐는 힘' 에서 유도의 하형주 선수는 왼손 힘이 90.5kg. 씨름의 유흥렬 선수는 오른손 힘이 99.9kg나 되는 괴력을 과시했다. 20대 일반인의 쥐는 힘은 43~49kg으로 나타나 국가대표 선수로서의 명성을 실감케 했다. 대표급 선수들은 다리 굽히는 힘에서 2백50% 이상, 다리 펴는 힘에서는 4백% 이상에 이르고 있지만 일반인은 이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허리 펴는 힘에서는 씨름의 곽연근 선수가 2백97kg으로 단연 수위를 차지했다. 이들은 대부분 20대의 일반인보다 거의 2배가 넘는 근력을 가진 철인들이었다.

민첩성의 기준이 되는 전신반응 시간에서도 빛반응 시간에서 수위를 보인 연식정구의 김성수 선수(0.121초), 소리반응 시간에서 수위를 차지한 수구의 김재연 선수(0.111초) 등은 일반인(0.2~0.3초)보다 엄청나게 빠른 민첩성을 과시했다. 순발력의 기준이 되는 제자리뛰기 (서전트 점프)에서는 20대 남자 일반인의 평균이 47~51cm 정도인 데 비해 역도의 최병찬 선수는 무려 98cm를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다.

운동선수들이 일반인에 비해 이처럼 탁월한 신체능력을 가지게 된 배경에는 선천적인 능력과 함께 이를 향상시키기 위한 피나는 노력이 숨어 있다. 그러나 그런 능력이 꾸준한 연습으로 더욱 향상될 수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인간은 쉽사리 철인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인간은 인간으로서의 한계 안에서 스포츠 능력을 개발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신체의 생리학적인 한계와 생물학적인 한계가 가로막고 있다.

 

속근과 지근 모순관계


스포츠 능력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보면 지구력과 근력으로 대별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두 능력은 인체의 구조상 서로 모순관계다. 인체의 근육은 근력을 발휘하는 특성에 따라 속근과 지근으로 나뉘는데, 근육조직 속에는 이들이 모자이크 형태로 얽혀 있다. 속근은 순간적인 힘을 발휘하기에 적합하고, 지근은 오래도록 운동을 유지할 수 있는 지구력을 발휘하는 데 적합하다. 단거리 육상선수나 던지기 선수들은 속근단련을 위주로 하는 데 비해, 마라톤 선수들은 지근을 중시한다.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면 속근이 발달해서 근육이 순간적인 큰 힘을 발휘하기 좋은 형태로 변한다. 그러나 이 경우 오랫동안 운동을 지속할 수 있는 지구력은 상대적으로 약해진다. 반면 지구력을 증진시키는 유산소 트레이닝(조깅, 달리기 등) 중심의 훈련을 하면 작고 섬세한 근육들이 발달하고 지근이 강화돼 지구력이 증가한다. 그러나 이 경우 지속적으로 힘을 내는 데는 유리하지만 한순간 매우 큰 파워를 분출하는 데는 불리하다. 결국 스피드와 지구력을 동시에 갖추고 싶어도, 신체의 구조상 한쪽이 강하면 상대적으로 다른 쪽이 약할 수밖에 없다.

근력과 지구력을 동시에 증진시켜 어떤 운동이든지 잘하는 철인이 되고 싶지만 이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인체의 구조상 우람한 근육을 가진 탁월한 마라토너는 불가능하다. 육상의 중거리 선수는 그야말로 1백m 달리기 선수가 갖추어야 하는 순간적인 빠르기는 물론, 마라톤 선수가 갖추어야 하는 지구력을 동시에 갖추고 싶어한다. 그러나 인간의 신체는 이를 쉽게 허락하지 않다. 중거리 육상 종목이 다른 어느 종목보다 어렵다고 말하는 것도 이처럼 이율배반적인 신체의 한계를 넘어서야 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할 수 없는 프로그램


스포츠 능력의 한계에 봉착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생물학적 한계 때문이다. 인체가 가진 모든 능력은 인간이 처해 있는 일상적인 환경에 가장 알맞은 수준에 맞추어져 있다. 인체는 인간으로 살아가기 편리하도록 맞추어져 있는 것이지 치타와 같은 야생동물 사냥꾼으로 살도록 진화되지 않은 것이다. 인간은 높이 뛰고, 빨리 달리고, 오래 견디는, 즉 일상생활에는 별로 사용되지 않는 능력을 많이 가질 필요가 없었다. 생존을 위해, 1백m 달리기 기록은 필요치 않은 것이다.

동물들의 경우 살아남기 위해 자연환경에 적응하면서 각종마다 특출한 하나의 능력에 진화의 에너지를 집중했다. 치타의 경우 시속 1백km의 속도를 낼 정도로, 달리는 능력에서만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이것은 치타가 자연에서 생존하기 위해 필사의 에너지를 소비한 결과다. 현재 지상에서 가장 빠른 인간이라도 달리기 속도는 시속 36.6km를 넘지 못한다. 인간이 인간으로 남아 있는 한 인간은 치타만큼 빨라질 수 없다. 왜냐하면 인간은 치타만큼 빨리 달리지 않고도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현재 가지고 있는 운동능력 이상의 힘과 기술을 얻기 위해서는 이미 생물학적으로 인체에 맞추어진 한계치를 다시 올려 조정해야 한다. 일상생활에서 필요한 만큼의 능력에 맞게 프로그램된 생체적인 사용과정을 변화시켜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인간의 진화과정 내서 부여되는 것이지 인간 스스로가 필요에 따라 조정할 수 없다.

 

1년에 0.01초 단축이 고작


인간은 스포츠라는 형식을 통해 끊임없이 생체능력을 개발하고 경쟁해 왔다. 말하자면 자연상태에서 주어진 능력으로서가 아니라 훈련에 의해서 인체의 능력을 향상시켜 왔다. 하지만 이렇게 향상된 인간의 능력은 근대 올림픽이 생겨난 지 1백년이 넘도록 겨우 보통능력에서 10~20% 정도 증가했을 뿐이다. 이미 1930년대의 1백m 기록이 10초03이었지만 9초99를 돌파한 것은 1968년이었다. 0.03초를 단축시키는 데 30년이 넘게 걸렸다. 그로부터 또 근 30년이 지난 1996년에 인간은 9초84의 기록을 지닐 수 있게 됐다. 인간의 피나는 노력이 대략 1년에 0.01초의 기록단축밖에 이룩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얼마 되지 않아 인간의 노력으로도 더 이상 극복할 수 없는 한계에 봉착할 것으로 보인다. 인간이 한계를 넓혀 가는 속도는 계속해서 느려지고 있다.

인간이라는 종으로 존재하는 한 치타와 같은 생체구조를 갖는 것은 영원히 불가능하다. 때문에 스포츠 능력의 한계는 스스로가 놓여 있는 생물학적 인간 한계인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오늘도 끊임없이 한계를 극복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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